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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 모음

단문들. 주로 트위터에서 키워드를 받은 것들

 

 

#더위
끊임없이 돌고 있습니다. 멈춰도 종말, 멈추지 않아도 종말이지요. 손을 입 앞에 모으고 소리치는 피실험자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망원경을 들어 엔진을 관찰했다. 족히 삼심키로 밖인데도 끔찍하게 더웠다. 문득 아랫배가 무거웠다.

 

#얼음
우회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잖아.

글쎄, 그런식으로 꼭 회피해야해?
들어봐. 이건 접근의 문제가 아니야. 예의의 문제라고.
그럼 다시 하지. 이건 어때?
검은 머리의 남자는 그대로 왼 손을 들더니 반지를 빼 얼음이 든 컵에 넣었다.

 

#손수건
다른 이름으로 이걸 부를 수 없을까?
그대로 분필을 내려놓고 싫은 소리를 하려던 허먼은 돌아서자마자 보이는 뉴튼의 진지한 얼굴에 잠시 생각을 멈췄다. 뉴튼은 허먼이 사용했다가 고스란히 빨아서 돌려준 손수건을 내보였다.

 

#바이러스

들어봐, 허먼. 카이주를 모르는 세대는  마치 바이러스같아. 개체수가 빠르게 늘며 평화를 여기저기 전염시키지. 전 세계는 지금 그들이 내뿜는 천연의 평화에 절여져있다고. 너와 나, 그리고 파일럿들만이 최후의 저항자가 될 거야.

 

#조화
차라리 조화였더라면 덜 슬펐을지도 모른다. 먼지가 슬기라도 하면 둘 곳이 마땅치않아 결국엔 부엌 쓰레기통에 버렸을테니까. 그러나 이런식으로 오래간만에 시집을 펼쳤을 때 그동안 삶이 어땠냐는 양 불쑥 나오는 말린 꽃들은 지독한 것이다.

 

#무제

당신의 글에서 고풍스러운 냄새가 납니다. 독립전쟁때 징병되어 죽은 작가들이 종종 그렇게 단어를 썼지요.

 

#커크와 찰스-1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한다는 점은 즐거움이고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지킨다는 표식이다. 찰스 자비에는 그런 식의 연산을 소중하게 여겼다. "당신은 저 위에서 왔군요." 그 말을 할 때에도 노란 셔츠의 질감이나 그 셔츠의 역사를 읽어내는 게 그 순간에 할애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표정으로, 찰스가 휠체어의 팔걸이를 만졌다. "우주의 세대예요. 당신의 기억이 좋아요." 그보다, 뱃지 좀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노란 셔츠를 입은 남자는 물끄러미 찰스를 바라보다가 틈 없는 태도로 "기꺼이." 라고 말했다.

 

#커크와 찰스-2

외로워서 외로워서 발자국을 보기 위해 거꾸로 걷습니다. 결핍은 찰스의 평등주의와 상성이 맞지 않지만, 짐은 그렇게 말함으로서 찰스가 자신의 괴로움을 눈금자로 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미스터 자비에, 당신은 박탈당했습니다. 찰스는 웃기만 했다.

 

#헤텝카심, 연꽃

나는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게 곧 내 삶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언제든지 생각하고 생각으로 인해 반응하고 결국엔 생각 때문에 죽겠지요. 헤텝, 이런 건 어떻습니까? 연못이 있는데 연꽃이 피어있어요. 헤텝? 나는 죽고싶군요.

 

#헤텝카심 연장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막연히 아는 것이다. 정확한 것 하나 없이 막연히 내가 당신을 죽이거나 당신이 내 목을 조르거나 아니면 둘 다 연꽃이 무성한 연못 속으로 빠진다는 것, 상상만 해도 발 안의 오목한 부분이 아릿해지는 순간이 시시각각 기어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카심은 낙뢰같은 한기에 몸을 떨었다. 다리에 이불이 엉켜있었는데 보고있으면 자꾸 한숨이 나오고 곧 죽을 사람같은 표정이 되었다.
당신을 수식하는 단어를 나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징하게도 당했다고, 당신의 이름을 아득 까득 머리 안의 돌무더기 위에 손톱으로 적어 수납한 날 밤, 우상이 몰락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제는 선생님이 나를 사랑하는지 헷갈립니다. 그런 것들이 명확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지요. 거짓말 같게도...
침상의 한켠에는 헤텝이 죽음을 표방하고 있다. 이불이 축축하게 젖는 순간 카심은 마침내 그 순간이 이빨을 드러내며 제 옆구리를 물었다고 생각했다.

 

#손목보호대
낙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낙뢰가 지나고 간 당신의 감나무요. 반으로 갈라진 것 밖에 못봤는데, 아직 감이 열립니까? 남자는 낙뢰라는 말을 할때 마치 풀 죽은 사람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나는 손목을 더 가렸다. 상처가 쑤셨다.

 

#본즈와 커크
커크의 손 안에 있다, 본즈는 막연하게 그런 문장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그건 이혼 이후의 삶에 결부된 부속지 같았고 끊임없이 따라붙으며 족적을 남겼는데, 하이포를 들고 서 있을때나 커크의 뒤통수를 바라볼 때 점점 증폭되었다. 우주가 짐의 손 안에 있다. 노란 머리가 퇴색되고 검은 빛을 띄다가 끝내 하얗게 번져도 계속 그럴 것 같았다. 커크의 뒷모습과 그의 의자는 족히 몇 백년은 풍화되지 않을 광물이고 엔터프라이즈호는 전설을 끊임없이 나르겠지. 자신은 그것을 볼 것이다, 보더라도 매번 드는 비릿한 생각이 다른 일반적인 행동처럼 불쑥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 문득 커크와 스팍과 함교의 평행선을 느꼈다.

 

#본즈와 커크, 다시
발바닥 가운데가 아찔하게 간지러울 정도로 혓바닥을 치대었고 정신없이 얼굴이며 목을 쓰다듬었다. 진공상태에 있는듯한 고양감을 지울 수가 없다. 본즈, 하고 한숨같이 나온 말이 몇번의 입맞춤 속에서 침처럼 묽어졌고 종내에는 질질 흘렀다. 짐은 격정적인 시를 타이핑 하는 사람처럼 본즈의 바지 버클에 대고 손을 두들겼는데, 시시한 농담으론 꼭 "노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본즈는 짐의 콧등에 가볍게 입술을 내리더니 파동이 이는 짐의 손을 잡아 내려 그대로 바지를 벗었다.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면 지금일 테지만 빛이 블라인드를 넘어 실낱같이 새어들어오는 기숙사 방에서 동기 둘은 입이 붙은 것 마냥 옴짝 달싹도 못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오기로 기어이 해내고 마는 어린아이의 양상으로, 커크가 본즈의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분명히 네가 내 죽음일 거다. 본즈가 욕구와 싸우는 목소리로 말했다. 휘어지고 갈라지는 끝에 술 냄새가 진득하게 났다. 커크는 문득 본즈가 가여워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리를 벌리면서도 껴안는 느낌으로, 나도 알아, 욕설 몇 번, 그리고 다시.

 

#커티스와 캐스 짧게
그가 먹고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찾게 되는 단서들은 고통스러울정도로 가까이에 있다. 그동안 새까맣게 더럽혀진 남자의 트렌치 코트가 다소 얇다는 것 외에는 별다르게 고민해 본 적도 없던 커티스는 생리적으로 불가능한 그 관념이 생각보다 큰 파동으로 내부의 화학작용을 촉진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대한 도끼날에 머리카락이라도 잘려나간 기분으로 발을 내리며 잠자리에서 벗어나는데 에드가가 그 다급함에 지레 놀랐는지 커티스? 하고 불렀다. 커티스는 갑작스레 깨달은 사실에 오버랩되는 에드가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더부룩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두 손을 들어 비니를 고치고는 황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얇은 트렌치코트 안에 방한도 안 될것 같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까치집을 하고 늘 앉아있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커티스는 드디어 머리 위를 지나치던 도끼가 목을 자르고 지나간 것 같이 놀랐다.

"당신 정말 천사요?"

커티스의 등장과 그의 입에서 "천사"라는, 이제는 누구도 쓰지 않아서 먼지만 날리는 단어가 나오기 까지 카스티엘은 모든 것이 이렇게 될 줄 알았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낙담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로 경청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잠시 숙였다. "내가 확실히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긴 하군." 이게 천사의 음성일까. 커티스는 은연중에 벽을 잡고 있었다. 그러자 열차칸 전체가 카스티엘에게 바쳐진 독방같이 느껴졌다. 갑작스레 명치 아래가 무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어. 나는 그냥 캐스일 뿐이야."

카스티엘이 우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더러워진 트렌치 코트를 힐끗 응시했다. 그러자 새 것처럼 청결해졌다. 커티스는 다시 도끼날의 쇠냄새 나는 바람을 느꼈다. 이번에는 그것들이 정확하게 심장을 뚫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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