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커크는 바닥에 한참을 누워있는 것만 인생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일인 것처럼 충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등을 찌르는 돌맹이도 무시한 채 입으로 호흡했다. 동이 터오고 있다는 사실은 하늘을 관찰하는 시점에서 이미 파악이 끝났기 때문에, 대신에 그러면 지금은 과연 몇 시쯤 되는 것인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다. 아이오와와는 다르게 해가 길게 머무는 캘리포니아의 안개낀 날들을 생각하면 네 시 삼십오 분 오십 초는 되지 않았을까? 이 생각을 하는 순간 몇 초가 더 허비되었으니 어쩌면 영영 정확한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젖혀진 코 안쪽으로 피가 타고 내려와 가래가 낀 것처럼 목구멍이 텁텁해서 계속 피를 삼켰다. 술기운이 확 달아날 정도로 요란한 향이었다. 이러다가 뇌가 피로 가득 차 죽을지도 모른다. 정신적인 질식, 고운 입자의 안개 너머로 창백한 빛이 자꾸 번졌다. 아지랑이처럼 달아나지도 않는다. 안개가 무거웠다. 폐에 들어차는게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맥코이는 그렇게 길게 누운 커크를 내려다보며 탄식했다.

 

 

  "해가 떴으니 그만 일어나지, 잠자는 아이오와의 공주?"

 

 

 맥코이가 그런 식으로 신랄하게 말을 할때면 커크는 염통 안쪽이 간질간질 거리면서 반박을 하고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곤 했는데, 지금 이 순간 만큼은 탄 면이 없이 온전한 토스트에 스크램블드 에그를 얹어 놓는 것처럼 완성된 기분이라 대답 대신 호흡에 집중하며 시선만 옮겼다. 서 있는 맥코이는 등 부분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어서 꼭 날개라도 돋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올바르게 서서 팔을 끌어안은 모습이 사람이라기 보다는 차가운 기색이 감도는 동상같아서 한참을 관찰하고 있으니 맥코이가 한숨을 쉬며 몸을 내려 커크의 곁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커크는 뺨 위를 가로지르는 맥코이의 미지근한 손가락을 느꼈다. 버튼이 눌린 것처럼 눈을 감고 있으니 맥코이가 담백하고 느릿하게 커크의 얼굴을 돌려보고 손을 내려 셔츠를 걷는 것이 느껴졌다.

 

 "워, 본즈. 여긴 침대 위가 아니야."

 "조용히 해라. 갈비뼈 살펴보는 중이니까." 

 

 

 그런 일이라면 열심히 하세요. 그렇게 중얼거리자 마자 등에 배겨있던 돌맹이가 못마땅할 정도로 강하게 인식이 되는 것이다. 커크는 신음을 하며 등 밑으로 손을 넣어 돌맹이를 털어냈다. 맥코이는 파랗게 멍이 들 기색을 보이는 뼈 부분을 만지작 거렸는데, 전류처럼 강한 통증이 허파를 찌르고 와 커크는 반쯤 몸을 일으켜 세울 기세로 움찔했다. 그 요란스러움이 맥코이를 순식간에 십오 년 정도 더 늙어보이게 만들었다. 맥코이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 숨결에 담긴 술 냄새는 코를 가득 채운 피 냄새를 뚫고도 정확히 전해져서 커크가 눈을 찌푸렸다. 너 얼마나 마셨어? 터진 입가가 열리고 그런 질문이 나왔을때 맥코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너 보다야 적게.

 

 "일단은 가자. 가야 뭐든 고치지 않겠니."

 "그래. 그게 네가 하는 일이지. 나를 고치는 거."

 "나는 이 일에서 졸업하고 싶다." 

 

 

 맥코이는 그렇게 말하며 커크의 어깨 아래에 손을 넣었다. 혹여라도 팔을 잘못 잡아 끌었다가 안 그래도 만신창이인 상태를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다는 듯의 제스쳐였다. 커크는 그 섬세함의 근본이 궁금했다. 의사는 사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결정되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냉정하다고 하기에는 단어의 의미가 너무 차갑고 자상하다고 하기에는 상대 를 인간을 넘어선 보호물의 위치로 보는 그 시야는 유전이거나, 재능이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가지고 있으면 불리한 약점이거나. 커크는 몸을 잔뜩 맥코이에게 기댔다. 맥코이는 무게감 때문에 휘청하는듯 싶더니 금방 커크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몸에 힘 제대로 안 주지. 그 말에 커크는 피식 웃고는 좀 더 몸에 힘을 풀었다. 내가 네게 뭘 바라겠니. 맥코이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하기만을 바랬던 것처럼 아랫배 깊은 곳이 충족되는 것을 느끼며, 다시. 사실은 다섯 시 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좋았다. 맥코이는 기어이 커크를 일으켜 세웠다.

 

 "이 정도로 못 걷는다는 이야긴 아니겠지?"

 "본즈. 좀 더 로맨틱한 말을 해봐."

 "아가씨의 가엾고 늙은 동키가 힘을 쓰지 못하니, 그 가녀린 다리에힘을 좀 주시지요."

 "가엾고 늙은 본즈......."

 "그래. 내가 그런 상황이야. 그만 주절대고, 왼발."

 

 

 로맨틱과는 지나치게 거리가 멀었지만, 커크는 센서가 고장이 났는지 본즈의 그 말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발바닥에 들어가는 압력을 조절했다. 맥코이는 발을 움직이라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 부지런히 걸었다. 커크는 꼭 스스로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같다고 느꼈다. 오래 누워있던 것도 아닌데 벌써 안개가 가시고 있었다. 말랑한 빛낱이 맥코이의 다부진 콧날에 비치는 것을 느끼면서 죽음을 생각하면서 아이오와와 비석과 여자애들과 싸움....... 의식의 흐름이 망가진 날개를 단 것처럼 이리저리 전환되는 것을 맥코이는 모를것이다. 아무리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팔을 끼워 놓은 채라도.

 

 

 "그래도 올해는 이 정도로 하고 넘겨서 다행이지."

 "나 좀 예쁘게 굴지 않냐."

 "그래. 신께 감사를 드리는 판국이다."

 

 커크는 맥코이가 신을 운운하자 갑작스레 술이 깨버렸다. 그 반대급부로 통증이 무거워진 몸을 하고 맥코이를 돌려보니 맥코이가 숨 냄새가날 정도로 가깝게 고개를 돌리고 커크를 바라봤다. 눈가가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농담 몇 가지를 생각하던 커크는 금방 시시해져 무리하게 몸을 움직여 맥코이의 이마에 가볍게 이마를 부딛혔다. 그 러고는 다시 시선을 내렸다. 네가 신을 이야기 하다니, 감히....... 그런 말을 중얼거리자 금방 무엄해지는 기분이었다. 맥코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말 하는 투야. 하고 넘겼다. 그리고 한참을 아직 가게도 열 지 않은 페더레이션 데이의 아침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

 

 

 

 

 

 "페더레이션 데이 생각나?"

 

 커크가 운을 뗄 즈음엔 맥코이가 그의 아랫배에 손을 담그고 리제너레이터를 필사적으로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커크는 앓는 소리를 내며 스팍의 무릎에 바쳐진 머리를 내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마에 땀이 맺힌 맥코이가 망가진 표정으로 커크를 잠깐 봤다가 다시 복구 작업에 집중을 했다. 커크는 꼭 생도 시절로 돌아간것 같은 기분에 실소가 터져나왔다. 아랫배가 출렁이자 맥코이가 무너져내렸다. 행동이나 표정이 아니라, 그의 몸 안에서 돌아가던 태엽이 고장난것 같은 분위기였다. 정작 내장이 터져 나온것은 이 함장님인데 말이지요. 커크의 고개가 흘러내리자 스팍이 그의 의도를 이해한다는 듯이 두 손으로 커크의 머리를 고정시켜주었다. 커크는 고맙다고 말할 힘도 없었으므로, 잠시 돌아가는 눈을 올려 스팍의 아랫턱을 응시했다가 시선을 침묵하는 맥코이에게로 옮기는 것으로 감사를 대신했다. 맥코이는 빠르게 다른 기구를 잡았는데 그 기구가 얼마 만큼의 마법을 부려서 커크를 살아나게 할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다. 신, 커크는 그렇게 생각하고 맥코이를 생각하고 엔터프라이즈호를 생각했다가 다시 페더레이션 데이로 흐름을 옮겼다. 부서지는 햇살....... 그렇게 찬란했던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런 것들이 콧잔등 위로 들러붙었다. 맥코이가 욕을 했고, 우후라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가 몸을 돌려 스카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주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커크는 다시 목소리를 쥐어짰다.

 

 "기억이 나냐고. 두 번째 페더레이션 데이. 네가 신에게 감사했던."

 "짐, 제발. 말 하지 마. 닥치고 살아 있기나 해."

 

 

 맥코이의 목소리가 끝부분에 가서는 절박한 힘이 들어갔다. 목소리만으로 커크를 살릴 수 있다면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듯이. 그 어투에 커크는 콧날이 시큰해졌다.

 

 "본즈, 나는 무서워."

 "제기랄... 짐. 괜찮아 질거야."

 

 

 내가 고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맥코이는 처음으로 피 묻은 손으로 커크의 뺨을 어루만졌다. 미지근한 손이 도장같은 미열을 남기는 것을 느끼며 커크는 눈을 감았다. 맥코이는 다 괜찮으니 눈만은 감지 말라고 부탁했다. 커크는 그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으로 눈꺼풀을 밀어 올리는데 도무지가 불가능했다. 스팍이 턱을 더 강하게 쥐는 것이 느껴졌다. 죽음이 찾아오는 거라면 이번에는 맥코이 조차 커크를 구해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그랬다. 커크는 죽음으로서 완성이 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모든 함장이 역사에 남는 방법은 죽음 뿐이다. 아랫배가 파해쳐진 것은 영광의 상처였다. 오늘 날짜가 며칠이었더라. 봄이 왔었나. 엔터프라이즈에 내려꽃히는 인공의 빛이 지나치 게 밝았다. 눈두덩이 위로 환한 동그라미들이 그려지는 게 보이자 커크는 날숨을 깊게 내쉬었다. 맥코이가 중얼거리는 것이 잘 들리지가 않았다. 지켜보던 술루가 앓는 소리를 내는 것만이 희미하게 들렸다. 커크는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류처럼 무한하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과거의 기억에 몸을 부딛쳤다.

 

 

 "살아 있으라고, 빌어먹을 자식아."

 

 

 맥코이의 그 말은 똑똑히 들렸다. 커크는 꼭 그렇게 해주고 싶었고, 선물을 주는 기분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이 굳은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영웅의 요람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