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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안은 케넥스가 사라졌을때 스캐너를 돌릴 필요도 없이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브레이킹 다운 포인트는 누구에게나 있다. 케넥스의 경우에는 인신디케이트와 관련된 화상이 스쳐지나거나 과거 사건의 실마리 비슷한 것을 잡았을때, 혹은 그러한 사건에 준하는 사태에 직면했을때 기억의 끝을 붙잡으며 몸을 숙이곤 했다. 자존심이 강한 그 남자는 그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했기 때문에 있을만한 곳은 뻔했다. 아무도 없는 취조실이나, 공용 화장실의 더러운 칸 안이나, 혹은 아주 드물게 시동조차 들어오지 않은 자신의 차에 틀어박혀 벌벌 떨고 있겠지. 도리안은 이번엔 그 장소가 취조실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어야할 취조실이 블라인드 처리가 된 채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계기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대체 멀쩡하던 케넥스가 왜 지금 이 시점에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느냐 보다는 그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며, 도리안에 취조실로 걸음을 옮겼다. 잠겨있는 문을 간단하게 해제하고 들어가니 역시나 케넥스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수그리고 암담한 숨만 내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존."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케넥스는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이 도리안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현실 파악의 시간은 길지 않았고 금세 몸을 잘게 떨며 물 밑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공포와 싸웠다. 이쯤 되서는 지긋지긋 하다고 표현해도 될 법한 상황이었다. 케넥스는 중심을 잡는데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떠올렸다. 주위가 영하라도 된듯이 몸이 벌벌 떨렸다. 도리안은 케넥스를 보며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않다가, 천천히 케넥스를 향해 걸어왔다. 케넥스는 접근을 용인했다. 도리안은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의미로는 경계 안으로 접근하게 할 만큼 도리안을 크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도리안은 그 사실에 미소를 짓거나 가벼운 농담을 했을텐데, 지금은 단순히 거리를 좁히는 것에 집중했다. 케넥스는 곧 숙인 자신의 시야에 도리안의 신발이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윽고 등에 안드로이드의 체온이 담긴 손이 닿았다.

 

"존. 나를 봐요."

 

그 말에 따라야 한다는 의무도 없었으면서 케넥스는 심리적인 한기와 싸우며 고개를 들었다. 도리안은 어느새 한쪽 무릎을 예의바르게 접고 케넥스와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평소같이 침착한 표정이었다. 케넥스는 금세 숨이 막혀 도로 몸을 웅크리고 자신과 싸웠다.

 

"존."

 

이름이 세번째 불렸을 때에는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케넥스는 이가 부딛힐 정도로 덜덜 떨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겨우 고개를 드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번에 도리안은 케넥스의 어깨를 잡고 서서히 그를 바로 앉혔다. 케넥스는 속도에 적응하며 몸을 세웠다. 도리안의 무릎이 가까워졌다.

 

"비, 빌어먹을 공황장애야. 새로울 것도 없, 없어."
"제겐 매 순간이 새롭죠. 존, 숨 쉬는 건 기억해요?"

 

그 말에는 가벼운 농담의 기색이 있었으므로 케넥스는 작게 웃음을 터트릴수 있었다.

 

"제 눈을 보는 거예요. 존, 난 심각해요. 당신이 숨을 못 쉬면 난 4년만에 깨어난 보람도 없이 다시 영원히 잠들게 된다구요."

 

도리안은 가벼운 너스레를 떨며 케넥스의 어깨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줬다. 케넥스는 겨우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좋은 시작이지. 그런 정보가 가볍게 지나가는 것을 관찰하며 도리안은 인간이 숨을 쉬듯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가 가라앉혔다. 케넥스, 내 호흡을 보세요. 당신도 이렇게 호흡하는 거예요. 도리안이 의미하고자 하던 말이 케넥스의 관자놀이를 타고 전류처럼 흘러들어왔다. 케넥스는 횡경막을 움직였다. 도리안은 이마를 점점 가깝게 해 나중에는 케넥스와 이마를 맞댄 모습으로 여전히 인간의 호흡을 표방하고 있었다. 케넥스는 도리안의 입술이나 그의 가슴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다가 금세 호흡에 익숙해졌다.

 

"맞아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천천히 긴장을 풀기 시작하는 케넥스를 보며 도리안이 그렇게 말했다. 케넥스는 눈을 감은 채로 눈알을 오랫동안 굴리다가 다시 눈을 떴다. 안드로이드의 차분하고 상냥한 회색 눈에 부딛혔을 때는 그대로 부유하고 있던 정신이 몸 안으로 한순간에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나 이제 괜찮아. 많이 나아졌어."

 

케넥스는 허리에 힘을 주고 똑바로 세웠다. 금세 체온이 전달되던 이마가 떨어졌다. 도리안은 한참을 케넥스를 관찰하더니 금방 무릎을 들어 똑바로 섰다.

 

"그래요, 존. 당신은 괜찮아졌어요."

 

표준적인 억양으로 흘러나오는 그 말은 꼭 마법 주문같은 역할을 해, 케넥스로 하여금 모든것이 괜찮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케넥스는 한참을 의자에 앉아 손으로 눈가를 주물거리다가 일어났다.

 

"나가자."

 

도리안이 수긍의 뜻으로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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