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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이야기

 

 

 

 

트위터의 가지님 연성을 보고 탄력받아 짧게...

 

 

 

꼭 술루가 늑대 이야기를 한 다음날이었다. 커다란 늑대가 무리를 이끌고 와 마을의 가장 변두리에 있던 집 아기를 물어갔다. 나는 촌장님이 사냥꾼들을 불러모으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머리가 거대한 구가 되어 그 안에서 사과나무가 자라는 것 같았다. 사과는 걱정스럽게 빨간 색이기도 했고, 늙어 죽은 금빛이기도 했다. 괜히 내가 이야기를 했지? 술루는 밥을 짓고 온 냄새를 여실히 풍기며 내 누운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목소리의 끝이 원점을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흥건했다. 나는 다만 문틈으로 노을을 보다가 돌아누워 술루의 냄새를 맡았다.
술루, 아기 말이예요.
응.
말을 꺼내놓고도 마무리짓질 못했다. 술루는 제 골반께에 코를 파묻은 나의 머리를 몇 번 더 쓰다듬더니 손을 움직여 뺨을 톡톡 두드렸다. 금세 술루가 조용해질 기색을 보였기 때문에 나는 뺨을 만지는 손을 가져와 내 눈 위로 올렸다. 눈꺼풀 너머로 내가 눈알을 굴리는 게 술루에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상상을 하면 술루가 손을 움찔거리는 것도 떠올랐다. 그런 작은 제스처가 쌓이다 보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 갈 것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내가 몸을 일으키는 데도 술루는 별 다른 움직임 없이 알 수 없는 표정을 했다.
동양인의 표정은 영원히 판독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걸어가 문을 완전히 닫았다. 돌아보자 술루가 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나는 하고 싶었던 말 대신에 그만둬요라고 했다. 술루가 다시 예의 불가사의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밤에는 그게 필요하지 않을거예요.
그때는 미묘하게 균열이 간 것 같기도 했는데 역시 어두워서 제대로 된 사정은 알지 못한다. 다가가자 술루가 체콥, 하고 불렀고 어깨가 드러났을 땐 밥이 식을텐데, 안 덮어두고 왔는데… 같이 사실은 별 의미도 없는 소리를 했다. 나는 다분히 고의적으로 술루의 옆구리를 눌렀다. 술루는 손이 차가워서 탄성을 냈다. 그 앓는 소리가 늑대를 부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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