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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W. Watson 

키워드 :환상, 방문

 

 

 

 

뇌, 우리는 뇌에 대해 이야기한다. 드리프트라는 일련의 절차를 통해 서로의 뇌를 방문하는 에티켓이나 공유몽보다 강한 그 결속력에 대해. 결속력, 거기까지 휘갈긴 허먼은 자신이 방금 써 놓은 문장을 유심히 골몰했다. 끝끝내 나오지 않는 재채기처럼 후두부가 간질간질했다. 수식이나 숫자에 대해 써야 해. 강박이라고 불리워도 좋다. 잠시 손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습관적으로 덜덜 떨던 허먼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놓았던 만년필을 다시 잡았다. 인생에 있어서, 로 시작되는 문장은 대체적으로 10분 이상 믿지 않는 주의였지만 결국엔 그 문장을 썼다. 찌그러진 노트의 모서리가 팔랑팔랑 제 멋대로 넘어갔고 그 과정에서 순간적인 위기감이 아랫배를 치고 들어왔다. 왜 이렇게 부산스러운가? 지팡이가 생명줄인 것처럼 그러쥐는데 문이 열렸다.
뉴튼.
허먼이 무기질적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드리프트는 강력하고 드리프트는 침묵이다. 허먼은 뉴튼의 뺨이 움직이는 모양으로 봐서 이것은 꿈인게 분명하다는 가설을 내렸다. 일반적인 꿈이 자각몽으로 넘어가는 시점인 것이다. 이럴 때는 몸이 새것처럼 생생했다. 지팡이를 밀어두기로 결심한 순간 두 다리에 온전하게 힘이 들어갔다. 이런 것은 주로 해방감이라고 부른다. 환상으로 만들어진 뉴튼은 멍청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그 자세로 굳어있었는데, 뭔가가 잘못되었을 때 취하는 경직된 분위기가 어깨에서부터 흘러나왔다. 허먼은 그게 신경쓰였다. 꿈속의 퍼스널이 왜 이렇게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 뉴튼은 단순한 퍼스널이 아니라 그저 꿈의 귀퉁이를 나눠가지는 공유몽의 또다른 주인이라던가. 허먼? 뉴튼이 한쪽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네가 여기 있어? 허먼은 대답할 타이밍도 생각할 타이밍도 놓쳤다. 다시한번 눈을 깜빡거리자 뉴튼이 느릿하게 걸어들어왔다. 호선을 그리는 어깨의 모양, 호흡같이 움직이는 다리. 채 세 걸음도 걷지 않았을 때 뉴튼은 이미 앉아있는 허먼의 곁에 와 있었다. 그리고 허먼이 좀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글씨체로 휘갈겨놓은 내용들을 읽었다.

"나는 네 꿈속에 있는거구나."
한참 뒤에 뉴튼이 짤막하게 말했다.

"그리고 상황을 보았을 때, 나도 네 꿈속에 있는 것 같단 말이야." 허먼은 짓이기듯이 말했는데, 뉴튼은 그게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한번 털고는 다시 한번 허먼의 노트를 읽었다. 이미 문장이 상당히 변형된 상태였다. 인생에 있어서 수식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허먼은 문장을 읽고 소름이 끼친다는 양 미간을 좁혔다. 내가 정말 저렇게 바보같은 문장을 썼단 말이야? 고스란히 읽히는 그 표정을 보고도 뉴튼은 슬프게 웃더니 "수식" 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그리고 다른 것을 채워넣었다: 인생에 있어서 교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아직도 네 꿈속에 있어?" 허먼은 그 말을 자신이 했는지 뉴튼이 했는지 헷갈려했다. 그러고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는 아직 밤이 많이 남아있었다. 다시 잠드려는 노력도 없이 천장에 얽힌 배관구의 모양을 보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복도가 방보다 밝았는지 방 안쪽으로 그림자가 길게 졌다. 허먼은 그 그림자가 점차 짧아지며 이윽고 머리맡에서 숨소리가 느껴질 때 까지 마비된 사람처럼 얌전히 있었다. 침대 스프링이 기우는 소리, 이불이 올라가는 소리, 옷이 구겨지는 소리, 안경벗는 소리, 한숨소리, 숨소리, 그리고 입술이 부딛히는 소리가 났다. 귀가 소리를 인내하는 동안 허먼은 두번 키스를 받았고 길게 뉴튼을 포옹했다.

"자주 방문해도 돼?" 나중에는 그런 소리도 들렸다. 허먼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했다. 온전하게 솔직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때로는 온점이기도 반점이기도 하다. 바로 귀 옆에서 뉴튼이 살아있는 소리가 났다. 허먼은 그곳에 뺨을 대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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