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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잡을 수 있던 시기가 있었는데 밤을 꼬박 새고 보는 아침처럼 몽롱한 정신으로 그만 허비해버렸다. 남는 것은 발자국마다 붙는 검은 타르의 조각, 혹은 그런 기억들, 그 정도일 뿐이다. 해가 질 때 마다 창 밖은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은 그저 당연한 수순이라고 보자, 그렇게 말하고 금방 참을 수 없이 불안해졌다.

 

 

 

Tattoo

 

 

 

 

지구를 꿈꾸는 사람처럼 둥글게 누웠다. 뺨을 댄 침대의 시트가 축축한 것에 대해서, 서른 다섯 시간을 불면한 사일러는 할 말이 많았다, 그러므로 되려 침묵하기로 한다. 부주의하게 한두 마디 내뱉어서 설명될 종류의 것도 아니며 그런식으로 왜곡해서 될 예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머리통 하나가 눕혀져 있는 베개에 대해서는 짤막한 부가설명을 할 수 있었다. 신이 있다면 신에게 맹세코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부숴버리고 싶은 머리통이었다. 동시에 끌어안고 영원히 사랑하고 싶은 머리통이기도 했다. 그런 류의 반발이 늘어 모든것을 중화시키는 지점에 파란 눈알 두 개가 있었고 도깨비불 같은 그게 번들거리며 자신을 응시하면 번번히 번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일러는 한번 호흡을 참고 날개가 돋아나려는 어깨를 으득거리며 눈을 감았다가 대니 하고 불렀다. 그게 그 이름을 부르는 방법이다. 대니... 그렇고 말고.

 

"대니."

 

사일러는 이름을 불렀다. 지금 이 침대위의 누구도 잠들어있지 않다는 걸 알아. 대니는 꿈쩍도 하지 않고 돌덩이처럼 질량감만 늘려갔다. 점점 자라난 대니의 존재감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창 밖으로 흘러가는 걸 손 놓고 바라보고 있자면 영원히 증식하는 물풀을 보는 기분이었다. 들어 봐, 대니. 벽을 타고 물풀이 자라고 있지. 우리는 그걸 물풀의 구성이라고 불러. 네가 잠들어 있을때나, 네가 아무것도 못 보는 눈을 뜨고 있을때나, 네가 나와 섹스할 때나 네가 나를 사랑하고 지금처럼 나를 외면하고 있을 때 조차 시시각각으로 자라. 그러면 나는 묻고 싶은 게 생겨. 대니, 너는 꿈 속을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든 적이 전혀 없니? 눈을 감으나 뜨나 네 앞에 이미지는 전혀 없는 그림이잖아. 사실 나는 네가 생김새를 이해한다는 게 경이롭고 소중한 너의 능력이라고 생각해. 대니? 대니. 물풀이 자라고 있어... 마지막 생각은 마치 구덩이에 대고 소리친 것처럼 사일러의 내부에서 울렸다. 사일러는 스스로가 텅 비고 멍청한 플라스틱 병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끔찍하면서도 바라 마지않는 상상이다.

 

"당신의 진짜 이름이 뭐야?"

 

사일러는 얼굴 앞에서 살랑거리는 물풀을 느끼다가 대니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을 때 화들짝 놀라 눈을 떴는데, 고정된것 같던 뒤통수가 스르륵 움직이더니 어느새 예의 그 파란 눈이 보였다. 대니는 이름에 대한 대답은 오로지 상대의 이름을 묻는 것뿐이라는 지론을 믿는 것처럼 보였다. 전혀 잠의 기색이 없는 얼굴이라 사일러는 손을 내어 그의 뺨을 만졌다. 대니는 인내하는 눈빛과 슬픈 표정을 섞어 몽롱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 표정이 지표면 어딘가에 운석처럼 떨어져 있을 마지막을 끌어당기는 것 같아서 문득 서러워졌다.

 

"사일러야."

"가브리엘은 천사의 이름이었잖아."

"그랬지."

"몇 명이나 죽였어?"

 

질문들의 간극이 지나치게 정교했다. 이제 사일러는 대니의 표정을 진단할 수 없게 되었다. 대니가 다시 돌아 누우려는 기색을 보일 때쯤이야 입 밖으로 말이 나갔다.

 

"네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어서 아마 타인의 손가락을 기워 붙여야 할거야."

"살인자와 동침했던 거구나."

"그래."

"그랬구나."

 

기가 막힌 일이지. 그렇지 않아? 대니는 그런 표정으로 웃으며 사일러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공포때문인지 아니면 배신감인지 대니의 피부가 은은하게 뜨거웠다. 사일러는 생각보다 마지막을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마지막이라니 그건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야, 정 마지막을 논하고 싶다면 차라리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자, 그런 방식의 사고를 전개했다. 이것은 어디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스스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방식이었다. 태생이 그랬다. 그의 뒷마당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있었고 매일 아침이나 매일 점심, 사실은 매 순간 시간에 균열이 갈 때 마다 그 장소로 강제로 호출되어 구덩이를 들여다본다. 내용물이 보일때도 있었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차라리 무한하게 자라는 물풀들을 보는 게 더 낫겠다 싶을 정도로 괴로운 순간들이 있었다. 한동안 균열이 없어 영원히 과거의 도장을 찍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영 오산이었는지 한꺼번에 몰아쳐서 돌아오는 지금이 특히 그랬다. 과거란 게 말이다. 도무지가 벗어날 수가 없다. 도무지가.

사일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대니의 위로 옮겨갔다. 두 무릎 사이에 대니의 허벅지가 얌전히 놓여있었는데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더니 사일러가 고개를 내려 대니의 귀밑에 입을 맞추자 뒤척이며 그 자리로 제 입술을 옮겼다. 대니의 입에서 아직도 짠 눈물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사일러는 절박해지지만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렇지 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른건 다 괜찮은데 네가 떠나겠다는 말을 하는 건 용납못해."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연인에서 컬렉션으로 위치가 바뀌는 거야?"

"대니, 제발 그런식으로 말하지 마."

"왜?"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까."

 

입 밖으로 내는 말들은 무서운거야. 사일러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대니에게 키스했다. 겁 주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완벽한 성공도 없을것이다. 혀를 넣었을 때 시체와 키스하는 기분이 들었고 사일러는 침대를 짚고 있던 한쪽 손을 빼내어 대니의 뺨을 다독거렸다. 그러면서 계속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손가락이 가엾은 연인의 뺨을 두드리다가 점차 내려와 눈물 냄새가 나는 셔츠를 밀어올리고 더 아래에 닿았을 때 대니는 딸꾹질같은 소리를 내며 입을 완전히 다물어버렸다. 사일러는 제 뺨으로 대니의 체온이 높은 뺨을 비비며 제발 하고 빌었다. 대니, 제발. 네가 내 전부야. 천성적으로 심성이 착한 대니는 그 속살거림에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일러는 대니의 몸에 입술의 궤적을 남기며 끊임없이 고해했다. 누군가를 어디에서 죽였으며 어떤 걸 얻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리고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대니의 가슴이 팽창하는 것이 공포로 인해 숨을 들이켰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나간 흔적을 남기며 서서히 내려가던 사일러가 대니의 성기를 입 안에 넣었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니는 그동안 미동도 없던 팔을 내려 사일러의 머리카락을 말아쥐었다. 두피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손가락에 사일러는 안도감과 탈력감과 슬픔이라는 이상한 조합을 동시에 느꼈다. 그런식의 제스처는 앞으로 완벽하게 괜찮을 것이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향후 관계의 안정성은 확보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겨우 그런 제스처 하나로 안심하게 되는 스스로의 상황이 안타깝고 한순간에 멀어진 기분이 드는 것이다. 대니의 손가락이 점점 더 강하게 머리카락을 붙잡았을 때 사일러는 대니가 사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완벽하게 내용물을 삼켰다.

 

"이 봉사의 의미는 뭐야?"

 

대니가 물었다. 숨이 가빠 약간 콧등 위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일러는 별 대답 없이 입가를 몇 번 닦고는 대니의 바지를 완전히 벗겨냈다. 그리고 침대 밑으로 바지가 떨어지기도 전에 그 빈 자리를 자신의 무릎으로 채웠다.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거지."

 

사일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스스로가 말도 안될 정도로 타락했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말을 덧붙이는 대신 섹스나 하자고 생각했다. 다시 얼굴을 대니의 목 아래에 비볐을 때 대니는 흠칫하며 두 손을 무의미하게 허공으로 띄웠다. 사일러는 그 손을 붙잡아 자신의 목 뒤로 둘렀다. 얌전히 딸려오는 것 같아서 다시 기특하고 감사하고 서글퍼졌다. 그 손이 잠시 머무르다가 내려와 사일러의 바지를 끌어내렸을 때 특히 더 그랬다.

개브, 아니, 사일러, 네 여기에 문신을 하자. 문신으로 네 나쁜 부분을 다 가려버리는거야. 대니가 사일러의 가슴에 뺨을 대면서 그렇게 말했다. 사일러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려 대니가 빠른 숨을 뱉는 그곳의 감각을 아득하게 복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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