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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씨봇 미러 이벤트 기반입니다.





1.
  바닥에 유난스럽게 핏방울이 떨어졌다.
  맥코이가 잠에서 깨어난 듯한 표정으로 함교에 전송이 되었을 때 이미 부상을 입고 단신으로 전송이 된 함장이 굳은 표정을 하고 바닥에 쓰레기처럼 누워 있었다. 함장이 가장 약해진 시기였지만 그의 추종자이거나 그의 충실한 개로 이루어진 함교는 사막처럼 고요했고 덕분에 맥코이의 잘려나간 오른 손목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만 거세게 들렸다. 의사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문득 무너지는 탑같은 몰골로 - 이 모든 사태에 대해 해명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의 표정로 묵묵히 함장을 응시하며 - 서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금방 몸을 돌려 메디베이로 향했다. 함장은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근처에 있던 소위에게 지금 당장 팀을 꾸려 자신 또한 메디베이로 수송하라고 전달했을 뿐 벤전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입을 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암살시도를 우려하여 세큐리티가 열 명이 붙었다. 걸어나간 맥코이와는 달리 함장은 엄중한 보호를 받으며 들것에 실려나갔다.

  메디베이의 사이코패스같은 간호원들은 예의 무감동한 표정으로 함장의 상처를 살폈는데, 함장은 드물게 얼이 나간 표정을 하고 옆에 누워 손목을 재생시키는 맥코이를 연신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맥코이가 심화된 재생을 위해 스캐너를 돌리러 메디베이의 다른 쪽 끝 수술실로 들어가는 순간에 함장은 이미 리제너레이터 안에서 손바닥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아이오와를 생각하려다가 그만뒀다. 복수를 짓씹을 시대는 지났다. 대신 다른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제는 어떻게 되는가? 제국과의 긴밀한 통신은 언제쯤 하면 되는가? 엔터프라이즈의 향후는? 그러다가도 잇새에 낀 음식물처럼 맥코이가 잃어버린 커프가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은색의 피곤한 광택……. 함장의 재생이 끝났을때도 맥코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함장은 잠깐 메디베이에 머물다가 포기한 모양새로 금방 떠났다. 전혀 평소의 그 답지 못한 행동이었으나 간호원들은 평소처럼 조용히 메디베이를 부유했다.

  맥코이는 재생이 끝나고 나서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압축기같이 닫힌 그 문 안에서 맥코이는 팔뚝을 짓눌렀던 무게감을 생각했다.

  발언에 한 치의 후회도 없었다. 네가 내 우주라고 말할 때 맥코이는 말을 함으로서 완성되는 의미의 종결을 직시했고 시선의 끝에서 죽어가는 빌어먹을 짐 커크, 점차로 닫히는 그 성단의 끄트머리를 훔칠 수 있었다. 짐 커크가 입을 열 때마다 별가루가 흩날리는 게 보였기 때문에 맥코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닥치게 하고 싶었지만 종내에는 그 별무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해졌다. 그의 말대로 요람으로 회귀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주의 부속품이기 때문에 사후에 그는 빛도 없는 검은 땅, 머리 셋의 개가 지키는 그런 검은 땅이 아닌 질적으로 온도가 다른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짐 커크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유감인 것은 지금이 그의 임종이 될 것이고 앞으로 하는 모든 '짐 커크의 정의'에는 죽음이 부속품같이 따라 붙을거라는 필연적인 사실이었다. 맥코이는 서러워질 시간도 없이 세상이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져 버리는 태양……. 맥코이는 시체를 에어락했다. 그것은 매우 당연하게 느껴졌으므로 스스로에게 변명을 할 여지도 전혀 주지 않았다. 사용하고 나서 물건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잔존하는 무게감.

  이제 더이상 내 지평은 넓어질 구석도 없이 머무르다가 터져버리겠구나. 양립할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이었을 뿐이지. 중력과 우주……. 끊임없이 핵분열이 일어나는것 같은 네 눈은 함장님도 가지고 계신데 말이다. 맥코이는 재생된 손을 열망하는 개처럼 끌어안았다. 그 순간만큼은 제 죽음의 방식을 확신할 수 있었다.






2.
  성단을 포용하는 자가 죽었다는 의미를 함장은 알지 못했다.
  탐사에 묵묵히 따라온 맥코이가 유테니안 잔당들의 기습으로 전신이 터져 죽어버렸기 때문에 화장을 할 어떤 덩어리도 남아있질 않았다. 그의 잔해가 도처에 널려있는 숲에 다시 돌아왔을때 함장은 무릎을 숙이고 바닥을 쓸어보았다. 말라붙은 피가 이계의 식물 위에 잔뜩 뿌려져있었다. 쪼그라 붙어가는 살점들도 보였다. 그의 손이 입으로 갔는지 입이 손으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대지에 키스하는 모습으로 함장이 고개를 낮췄다가 다시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아직 살아있는 세큐리티에게, "닥터 맥코이의 죽음을 기록해." 짤막하게 말했을 뿐이다.

  "넌 이 숲이 된 거구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재미가 없는 농담이었음을 순순히 인정했다. 함장은 천천히 뒤로 돌다가 질긴 구둣굽 아래로 둥글게 느껴지는 것이 있어 발을 빼고 주워들었다. 도살장에서 주워온 것처럼 조잡하고 비위생적인 뼛조각 위에 살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모형을 우지하고 있었다. 함장은 그게 맥코이의 오른손이라고 판단했다. 함장의 행동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앞서나가던 세큐리티들이 몸을 돌렸을때 함장은 보급형 손칼로 맥코이의 검지 손가락을 잘랐다. 피가 젤리같이 굳은 단면이 보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을 주머니에 갈무리했다.

  "계속 가지."

  함장의 온순한 목소리에 세큐리티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걸었다. 그러나 함장은 금방 땅을 밟는 발이 가벼워지며 의식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을 느꼈다. 기억이 며칠 전으로 돌아갔다. 함장은 제어하지 않으며 마음껏 떠올렸다.

  맥코이의 손이 완전히 붙고 함장이 변화의 두각을 보이는 면 없이 얌전하게 엔터프라이즈에 스며들었을때, 혹은 그런 확신이 들었을때 함장은 맥코이를 개인 쿼터로 불렀다. 사실은 그 날 이후로도 무수하게 그런 일이 있었지만, 유독 그 순간이 기억이 나는 것은 그 날의 맥코이가 옷을 벗어 정갈하게 개 놓는 손길이나 그의 유리 공예품같이 감정이 고스란히 투과되는 얼굴 때문이었다. 턱관절을 끌어올려 수치를 참느라 굳은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맥코이는 속이 텅 빈 유리컵 같았다. 함장은 기저에서 부터 솟아오르는 불쾌감을 느끼고 가까이 올 것을 명령했다. 생도 시절 이후 다시 자신의 손에 떨어진 것이라 생각하니 잠시 잠잠했다가도 금세 소유욕이 일었다. 맥코이는 담담하게 침대 위로 올라가 헤드를 붙잡았다. 그리고 묵묵히 달릴 것을 요구했다.

  그 침묵이 종내에는 함장의 눈을 완전히 뒤집히게 만들었다. 맥코이는 애원하는 법이 없었다.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함장은 잠시 생도 때의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가 그런 식으로 생각을 연계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 맥코이의 종아리를 멍이 들 정도로 강하게 쥐었다. 맥코이는 신음 소리를 낼 뿐 벙어리라도 된 양 묵묵 부답으로 한계에 가깝게 찌르고 들어오는 함장의 성기를 감내했다. 귓바퀴를 씹으며 온갖 모욕적이고 공포스러운 말을 구겨넣어도 마찬가지였다. 맥코이가 함장의 배에 사정하고 함장이 끝내 끝을 보았을때 맥코이는 만신창이가 되어 가슴을 크게 부풀어올리며 숨을 쉬었다. 함장은 그 가슴을 파헤쳐 심장이라도 뜯어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협박에도 열리지 않던 입이 열리자 호기심 때문이라도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맥코이는 한 팔로 눈을 가린채 뭔가를 말할 모양새로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가, 눈을 가린 손을 내리며 함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함장은 다음 순간을 기다렸다. 맥코이의 입에서는 잔뜩 쉰 소리가 나왔다.

  "너는 이름이 없어."

  함장은 등줄기를 후려치고 지나가는 전율을 느꼈는데 그것은 공포에 좀 더 가까웠다.

  "가엾은 자식……."

  그 말의 말미에는 누군가가 겹쳐보였다. 함장은 그 말이 주는 기묘한 느낌에 그대로 굳어버렸기 때문에 지친듯이 눈을 감는 맥코이를 용납했다. 맥코이는 그것을 일종의 허락으로 받아들였는지 다리가 늘어진 자세 그대로 뻗어버렸다. 함장은 눈치를 봤다가 눈치를 봤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맥코이의 허리를 다시 잡았다. 손톱자국이 길게 남자 맥코이가 신음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맥코이의 말이 등허리에 붙어 피부 표면을 차갑게 만들었다.

  "엿같은 새끼들 뿐이군."

  함장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기억에서 헤어나왔다. 맥코이의 시신을 다시 돌아보고 싶었지만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살짝 앞서나가는 세큐리티와 발을 맞춰 숲을 벗어났다. 태양이 셋이나 뜨는 행성이라 그런지 식물이 없는 지표는 벌칸보다 뜨거웠다. 첫 발을 내디디는 순간 함장은 등 뒤에서 숲이 닫혔다고 생각했다. 맥코이의 죽음, 맥코이의 죽음……. 그러자 드디어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함장은 스스로가 짐 커크라고 새삼스럽게 각인했다. 페이저건이 온순한 맥코이의 손가락과 함께 주머니에서 요동쳤다. 벤전스에서 끝냈어야할 문장의 마침표가 맥코이의 죽음으로 비로서 발휘된다. 그래, 이게 사는 거지, 이게 짐 커크의 삶이라는 거야. 커크는 그렇게 연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대로 주위를 경계하며 엔터프라이즈로 부터의 연락을 기다렸다.

아우프헤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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